나 이장면 정말 너무 맘에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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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Human Touch
Case6: Human Touch

"현재 가장 큰 문제는 17번 플렌트에서 도망친 1급 지정 봉인 휴머노이드 입니다! 그것이 어떤 건지 밝혀지면
 우리는 물론, 제논 트리탄 자체가 위기에 빠지게 될 것 입니다!"

짙은 남색을 입은 한 중년 남성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지만, 모두들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단지 회의실의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간 것이 전부였다.
트리탄다이스, 현재 제논 트리탄의 주인이자 모든 것의 정점에 선 남자...그는 자신의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자신의
앞에 가져다놓은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있던 손은 잠시 후, 자신의 옆에 서 있던
 흰 가운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검은 머리에 일견 유약해보이는 외모, 하지만 그의 안경너머의 안광은
다른 누구를 압도할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한 가지 정정하자면, 도망친게 아니라 실종입니다. 조사 결과, 그 당시 17번 플렌트의 보안 시스템 전체에
 걸친 해킹이 있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마 A.V.F.는 중추 시스템에까지 도달한 것 같습니다. 보안 시스템의 해킹
 와중에 아마 그녀의 보안 시스템도 같이 해킹된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흰 가운의 남자는 자신이 들고 있던 서류철의 종이를 넘기며 지극히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그의 대답을 들은 또 다른
임원이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렇다면 그 휴머노이드가 A.V.F.의 손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는 건데, 그러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만약 그녀의
 최종 보안 장치를 푼다면..."

그 의견에 흰 가운의 남자는 그 발언을 한 임원을 보고 마치 내려다보는 듯 가볍게 비웃음을 보내고 서류철을 덮었다.

"그건 절대로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녀의 최종 보안 시스템은 절대로 풀 수 없는 겁니다. 그건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플렌트의 서큐리티 시스템도 뚫렸는데 그것도 안 뚫린다고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이래서 연구만 하는 녀석들은..."

"최소한 당신처럼 아무 것도 안하는 건 아니라 다행이군요."

"뭐라고!?"

그는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만!"

트리탄다이스의 한 마디로 그 임원은 흰 가운의 남자를 노려본 다음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나도 라이오넬 연구주임의 의견에 찬성하네. 제논 트리탄 최고의 과학자, 라이오넬 연구주임의
 프로그램을 풀 수 있는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현재로서는 일단 17번, 18번 플렌트의
 재건에 중점을 둬야한다고 생각하네. 그럼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그리고 라이오넬
 연구주임은 잠시 시간을 좀 내줬으면 하네."

그 말을 끝으로 트리탄다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라이오넬 연구주임과 함께 회의실을 나왔다.
하지만 나머지 임원들은 여전히 회의실에 남아 A.V.F.에 의해 파괴된 17번, 18번 플렌트의 제건을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흰색으로 칠해진 복도를 걸어 얼마나 왔을까, 트리탄다이스는 자신의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했다.
그리고 라이오넬 연구주임도 자신의 안경을 벗어 가운의 앞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알프레드...과연 괜찮을까?"

"괜찮아. 그 시스템은 나조차도 풀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시스템이니까."

"아니...시스템 이야기가 아니야."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기에 트리탄다이스는 잠시 말을 끊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어느정도 내려갔을 무렵 그는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린 이대로 괜찮을까? 우리들은...예전처럼 빛나고 있을까?"

"제이크, 난...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할 여유 같은 건 없어."

"레이카가...있었더라면 대답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후훗...레이카 앞에서 그런 소릴 했다간 아마 크게 혼날껄, '가장 빛나는 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  라면서 말이야."

하지만 둘의 대화는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다다르자 끝났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트리탄다이스는 자신의 사무실로, 라이오넬은 자신의 연구실로 각각 발걸음을 올렸다.

11층에 위치한 라이오넬의 연구실, 전화기와 서류가 놓여진 흰 책상, 그리고 한 쪽 벽에 빽빽하게 들어차있는
책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심플한 공간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책상 위에 놓여있는 하나의 액자,
거기에는 잔디밭을 배경으로 네 명의 남녀가 환하게 웃고있었다.

제논트리탄 본사 11층, 이곳은 제논 트리탄 산하의 사병들이 쓰는 모든 장비들과 각종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중추인 제논 트리탄의 연구실이 있는 곳이자 그 모든 것의 개발자이기도 한 라이오넬 주임의 연구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연구실의 책상에서 연구주임인 라이오넬은 책상 위에 놓인 사진들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이건가...이번 제약 연구소의 사고현장의 사진이..."

"그렇습니다."

그의 뒤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서류철을 들여다보며 라이오넬에게 지난 사건의 계요와 결과를
보고하고 있었다.

"지난 사건은 생물체가 아닌 기계에 대한 제논의 감염, 그리고 그 피해는 건설 중이었던 제논 트리탄의
 제약 연구소의 피해입니다만 손상은 경미, 그리고..."

"잠깐만..."

라이오넬은 눈썹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 놓인 사진들 사이에 있는 보고서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파괴된 제논에 대해서인데...당시 출동한 특무대 대원들의 무장은 전자 진압봉과 나이프, 젠거 과장은
그 외에 자신의 검을 가지고 간 걸로 기록되어있네만, 이 총격에 의한 파괴는 어떻게 된건가?"

"그게...대원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제논에 감염된 공사용 장비는 누군가의 총격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검은 양복의 남자는 당황한 듯 잠시 말을 끊었으나 아까전과 같은 담담한 목소리로 보고서의 다음장을 넘기며
의외의 사실을 라이오넬 주임에게 보고했다. 라이오넬 주임은 잠시 의문에 쌓인 듯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검은 양복의 남자는 그런 라이오넬의 표정을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도망친 사람에 의하면 그 자리에 소녀 한 명이 마지막으로 남아있었다고 합니다만..."

"그래서 그 소녀의 시체는 찾았나?"

"아니 그게...모두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아마 그 소녀가 제논을 파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재미있군."

"예?"

따분하다는 듯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내뱉은 라이오넬의 말에 검은 양복의 남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아는 라이오넬 연구주임은 빈말로도 '재미있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당시 소녀의 인상착의는 혼란상태라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긴 검은 머리를 묶고 있는 10대 중, 후반으로 보였다라...
 조사할 가치는 있겠어. 이봐 자네."

"예."

"이번 사건의 조사는 내가 직접하도록 하지."

"하지만 이런 일은 저희 조사팀이 맡아 이미 조사원을 파견했습니다만..."

"자네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내 추측이 맞다면 이건 비상사태다. 회장에게는 내가  말해두도록 하지."

라이오넬의 강한 말투에 검은 양복의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보고서를 들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검은 양복의 남자가 연구실을 나가자 그는 자신의 책상에 놓인 전화를 들어 비서실의 다이얼을 눌렀다.

"예, 회장실입니다."

"라이오넬 연구주임이네. 지금 즉시 회장실로 전화를 돌려주게."

"하지만 지금 손님이 와 계셔서..."

"비상사태다. 빨리."

"알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미리가 제논을 파괴했던 빌딩의 공사장에 검은 색의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주차를 했다. 그리고 베이지색 레인코트를 입은 라이오넬 연구주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검은 양복의 남자는 불안한 듯,

"회장님의 지시도 없이 독단으로 현장으로 오는 건 좀..."

"걱정말게. 회장에게는 조사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았으니까. 자넨 여기서 잠시 기다리게
그리고 차에서 내린 그는 천천히 얼마간 주위를 둘러본 후, 주택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를 걸었을까,
그의 앞에 피코페코의 간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코페코의 문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 라이오넬은
피코페코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미안하지만 점장님 있습니까?"

마침 서빙을 하던 가연이 라이오넬을 맞이했지만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점장인 레이카의 유무를 물었다.
가연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활기찬 목소리로

"잠시만 기다리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주방에 있던 레이카를 부르러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주방에서 나온 레이카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보고

"알프레드...라이오넬"

동요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그런 레이카의 동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오랜만이야. 서서 이야기 하긴 좀 그러니 앉는게 어때?"

먼저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그 뒤를 이어 레이카도 마지못해 맞은편의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둘 사아의 어색한 침묵은 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가연이 가지고 온 두 잔의
커피에 의해 깨어졌다. 찾잔을 내려놓은 가연이 그 자리를 떠나자 라이오넬이 먼저 그 침묵을 깨었다.

"그나저나...괜찮은 인테리어네. 레이카에게 잘 어울려."

"고. 고마워...."

"응..."

그 대화를 끝으로 다시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번에 그 침묵을 깬 것은 레이카였다.

"그러고보니...제이크는...어떻게 지내?"

"잘 지내고 있어. 언제나 회장실과 회의실의 반복이지."

"넌 어때?"

"순조로워.연구도, 생활도..."

"그렇...구나"

세번째의 침묵 후, 레이카는 마음을 다잡듯 라이오넬을 노려보며 강한 어조로 물었다.

"여긴 무슨 일이야?"

"아아...지난 번 제논 사건 때문에 조사차 나온거야. 이 근처에서 실종된 휴머노이드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소녀를 봤다라는 보고가 신경쓰여서...그리고 하나 더..."

라이오넬은 잠시 말을 끊은 다음 자신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레이카의 앞에 내밀었다.

"널 설득하기 위해서야."

"무슨...소리야?"

그 명함을 보며 레이카는 동요했는지 당황한 목소리로 라이오넬에게 물었다. 하지만 레이카와 대조적으로
라이오넬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돌아와줬으면 좋겠어. 예전처럼 셋이서 같이...."

"그 연구를...다시 하란 말이야?"

라이오넬의 말에 레이카는 분노를 억누르듯 차갑게 라이오넬을 노려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하지만 라이오넬는 그녀의 그런 분노어린 표정을 그냥 흘려넘기며 말을 이었다.

"아니...지금 이 근처에 짓고있는 제논 트리탄 계열의 제약회사에 연구원으로 와줬으면 좋겠어."

"제약회사..."

"그래, 그 때와 같은 연구가 아닌, 제약회사 연구소의 감독을 해줬으면 해."

"싫어. 더 이상 제논 트리탄에 관련되고 싶지 않아."

라이오넬의 제안을 레이카는 그 자리에서 딱잘라 거절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포기하지않고 레이카를 설득했다.

"그 때 같은 연구를 하라는게 아니야. 그저 있어주기만 하면 돼. 옛날처럼 셋이서 같이 하자. 제발 돌아와줘."

"........돌아가."

"레이카 부탁이야."

"....제발 돌아가줘."

"돌아와줘...레이."

"....그렇게 부르지마."

"제이크도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까 레이...."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아줘....부탁이야. 알프. 부탁이니까..."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고 괴로운 듯 목소리를 짜내는 레이카를 보며 라이오넬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자신의 앞에 놓인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기다릴테니까. 명함 뒤에 내 직통전화번호를 적어놨어. 거기로 전화해줘. 그럼."

그리고 라이오넬은 문을 열고 가게를 나갔다. 하지만 레이카는 그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앉아있는 테이블의 아래에는 몇 개의 물방울이 생겨났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쥐어짜듯 한 마디를 내뱉았다.

"...정말 몇년이 지나도 넥타이 제대로 못매는건 똑같다니까."

그는 그녀의 작은 흐느낌을 들으면서도 냉정히 피코페코의 가게문을 닫고 나왔다.

"그때도 오늘같이 노을이 아름다웠었는데..."

자조적인 목소리로 조용히 되뇌우는 그의 한마디는 저녁노을이 비추는 피코페코를 조용히 메우고 있었다.


"알프! 알프!"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알프레드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눈을 떴다. 거기에는 언제나처럼 빨간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은 러프한 차림의 레이카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본 알프레드는 '이제 곧 또 언제나 똑같은
잔소리가 쏟아지겠지.' 라는 예측으로 졸린 눈을 비볐다. 그리고 그의 예상을 배신하지 않듯 레이카는 팔짱을 끼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정말! 자려면 최소한 눈에 띄는 곳에서 자! 찾느라고 힘들었다고!"

"후아아암~발전했네. 전에는 자는 것 자체로 잔소리 하더니..."

"호오~그런 말 하는 거 보니 이건 필요없나보지?"

"죄송합니다."

레이카는 자신이 들고 있던 도시락통을 흔들어보였다. 그걸 본 알프레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솔직히 사과했다.
그 사과에 기분이 풀린 듯 레이카는 웃음을 지으며

"좋아, 좋아. 착한 아이라 다행이네. 그럼 점심 먹자."

자신이 가지고 온 도시락통을 펼쳤다. 거기에는 심플하지만 굉장히 먹음직스러워보이는 반찬들이 소박하게
담겨있었다. 알프레드는 자신의 몫을 먹으며

"그러고보니 제이크는? 오늘 안 보이는 것 같던데..."

"어디선가 또 후배라도 꼬시고 있겠지...정말 구제불능이라니까."

레이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레이카, 제이크, 알프레드는 전 세계의 모든 인제를 모아 최고의 교육을
시킨다는 국제 연합 대학에서도 톱 클레스에 드는 세 명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정말, 아이다 선배가 걱정한다니까. 매일 잘 챙겨먹고 있는지 하고 말이야.  단 둘 뿐인 가족이라 걱정이 많은 건
알지만 그 덕분에 부탁받은 나만 고생이라니까."

"아..그건 미안, 걱정많은 누나를 둬서."

"정말 그래. 아이다 선배 부탁만 아니면 전혀 신경 안 쓴다고."

"그나저나 요리가 점점 발전하네. 제이크 녀석이 알면 꽤나 분해하겠는데."

"냅둬. 그런 녀석...정말 인간이 안됐다니까."

"누가 인간이 안됐다고?"

둘의 대화에 갑자기 누군가가 끼어들었기에 둘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눈부신 햇살을 배경으로 깔끔하다는
인상이 강한 남자가 끼어들어 알프레드의 앞에 있던 반찬을 하나 집어먹으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호오~이젠 꽤 맛있게 요리할 수 있게 됬네, 레이레이?"

"제이크! 그렇게 부르지 마! 그리고 그건 알프레드 몫이야. 그러니까 집어먹지 마!"

레이카는 허겁지겁 알프레드 앞에 놓인 도시락을 손으로 감추듯 덮었다. 그걸 본 알프레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뭐, 레이라도 언제나 제자리 일 수는 없잖아. 점점 맛있어져야지."

"우웃 알프 너까지!"

"어머, 재미있어보이네?"

"아! 아이다 선배!"

그 때 그들을 보며 지나가던 세미롱 헤어의 여성이 흰 가운을 날리며 가볍게 걸어와 그들 옆에 앉았다.
그러자 레이카는 마치 연극을 하듯 과장된 몸짓으로

"선배에~알프랑 제이크가 괴롭혀요!"

그 모습을 본 아이다는 즐거운 듯 웃으며 둘을 잠시 보았다. 그 모습에 알프레드와 제이크 둘 다 마치 장난을 치다
들킨 초등학생처럼 우물쭈물했다. 그걸 본 아이다는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으며

"그러면 안돼. 셋 다 사이좋게 지내야지."

"아이다 선배. 죄송합니다."

"누나, 미안."

"후훗...알면 됬어. 그리고 언제나 알이 속썩여서 미안해. 그래도 난 이렇게 도시락까지..."

"선배! 스톱! 스톱! 아하하...선배 그러고보니 오늘 실험이지요?"

당황하며 아이다의 말을 막는 레이카를 잠시 이상한 듯 본 아이다는 생각난 듯 시계를 보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셋 다 다음에 보자."

"아이다 선배! 내일 데이트 해요!"

"후훗...나중에"
 
제이크의 말에 아이다는 그런 작별인사를 남기고 총총히 대학건물로 돌아갔다. 아이다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레이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옆에는, 어째서인지 능글맞게 웃는 제이크와 영문을 모른채 앉아있는
알프레드가 있었다.

"누나가 뭔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알프!"

"옛!?"

두 눈을 부릅 뜬 레이카가 강하게 알프레드를 부르자 그는 순간 경직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의 반응에 레이카는
더욱 매섭게 노려보며

"지금 이야기...절대로! 잊어야 돼. 알았지? 아이다 선배에게도 절대로 물어보지마."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알겠지?"

"으..응"

"푸...푸하하하하핫!"

그걸 옆에서 보고 있던 제이크는 배를 잡고 큰 소리로 웃으며 뒹굴고 있었다. 그런 제이크를 레이카가 무섭게
노려보자 제이크는 여전히 웃으며

"어이쿠! 저렇게 무서워서야...그럼 난 간다. 이런 일은 끼어들면 크게 다치니까."

라며 상큼한 웃음을 지으며 잔디밭을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학교 건물이 아닌 교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걸 본 레이카는 한숨을 쉬며,

"저 녀석...절대로 여자 꼬시러 가는거야...절대로"

"그럴까? 저래뵈도 제이크도 착실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그보다 '이런 일'이라니...무슨 일이지?"

그런 알프레드의 반응에 레이카는 진심으로 질렸다는 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레이카는 굉장히 어색한 극상의 미소를 지으며

"그럼, 친애하는 알프레드 군~"

"이번엔 무슨 과제야?"

그런 레이카의 반응에 알프레드는 알았다는 듯, 즉시 반응을 보였다. 그 말에 레이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묵직한 종이뭉치를 꺼냈다.

"이번에 환자들 중에서 샘플을 추출해서 그 경과를 정리해야되는게 있는데...역시 나한텐 좀 어려워서..."

"이거 꽤 어렵네...시간이 좀 걸리겠는걸"

"아...뭐..뭣하면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할래? 저녁 만들어줄테니까"

"흠...그럼 신세 좀 질께"

"좋았어! 그럼 저녁 수업 마치고 교문에서 보자! 아. 도시락통은 그때 주면 돼. 그럼 난 수업이 있어서 이만."

레이카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알프레드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급히 학교 건물로 사라졌다. 알프레드도 멀어져가는
레이카를 향해 손을 흔들며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레이카녀석, 과제를 나한테 하나 넘겨서 해결한게 그렇게 기쁜가?"

급히 학교 건물로 돌아온 레이카는 즉시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통화음이 흐른 후, 상대편이 수화기를 들며 사무적인 말투로,

"예. 아밀레이드 부티크 입니다."

"엄마! 나야! 레이카!"

"귀 떨어지겠다. 조용히 말해!"

레이카가 전화를 건 곳은 자신의 모친이 운영하는 부티크 샵 '아밀레이드'였다. 레이카는 그런 어머니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오늘 친구랑 같이 우리 집에서 과제하기로 했는데 괜찮지?! 괜찮지!? 절대로 괜찮다고 말해줘!"

"정말 귀 떨어지겠다니까....알았다. 알았으니까."

"야호! 엄마 사랑해요!"

어머니의 허락에 레이카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기쁨은 이어 나온 어머니의 말에
급격히 식어버렸다.

"그러면 오늘 나도 저녁 때 가게는 점원에게 맡기고 일찍 들어가도록 할테니까"

"에엑! 무슨 소리야?!"

".......남자지?"

"윽!"

잠시간의 침묵 후 이어진 어머니의 말에 레이카는 단말마의 비명이라고 해도 될 만큼 격렬하고 비통하게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걸 들은 어머니는 잠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언제나 왈가닥일 것 같던 레이카가 반한 남자라니...기대되네."

"아..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냥 과제가 와서...친구가...그러니까...그러니까..."

"그런 반응 때문에 더 알기 쉬운거야...정말 누굴 닮은 건지."

"....그럼 끊을께..."

수화기 건너편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레이카는 휴대폰의 수신 버튼을 눌러 통화를 끝내고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자신은 절대로 어머니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저녁 무렵, 레이카와 알프레드는 한적한 주택가의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잠시 걸어들어가자
거기에는 작은 2층 양옥으로 지어진 레이카의 집이 보였다.

"자자. 편하게 들어와."

"그러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레이카 이제 오니?"

"히이~익!"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기에는 레이카의 어머니가 앞치마를 입고 서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매우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그리고 레이카의 반응은... 매우 스트레이트하게 어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알프레드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 처음이구나. 난 레이카의 어머니야. 역시 안 닮았지? 호호호."

"처음 뵙겠습니다. 알프레드 라이오넬이라고 합니다."

"자기 집 처럼 생각하고 편하게 있다가. 마침 저녁도 하고 있으니까 먹고 가도록 해."

"감사합니다."

그런 레이카의 어머니의 왠지모를 환대 속에 알프레드는 레이카와 함께 방으로 올라갔다. 레이카의 방은 또래의
여자아이들의 방과 같이 약간은 화려하게 꾸며져있었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레이카의 방에 있는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가방 속의 종이뭉치를 꺼내 즉시 계산에 몰입했다.

"저기..알프"

"........."

"알프?"

"........."

레이카의 부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알프레드는 종이와 컴퓨터를 앞에 두고 숫자들과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그걸 본 레이카는 들으라는 듯 크게 한숨을 쉬었지만 알프레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도 잠시 후, 레이카의 방문이 벌컥 열리는 것으로 깨졌다.

"다들 피곤하지? 이거 먹고 하렴."

"엄마!"

라며 레이카의 어머니가 쟁반에 커피 두 잔을 들고 기운차게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소란에도 알프레드는 그저 계산에만 집중 할 뿐이었다. 레이카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 앞에 커피를 두며 나즈막히 물었다.

"저 애...원래 저렇게 말이 없니?"

"아니...계산하기 시작하면 거기에 푹 빠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뿐이야."

그런 모녀간의 대화가 진행되는 것도 모르고 계산에 빠져있던 알프레드는 잠시 기지개를 켜다가 이제서야 눈치챈 듯 웃으며

"아...커피군요. 마침 필요했는데 고맙습니다."

라며 레이카의 어머니가 가지고 온 커피를 받아들고 방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그런 그를 보며 레이카의 어머니는 못참겠다는 듯 다급하게 물었다.

"그나저나 우리 레이카랑은 어디까지 갔니?"

"푸웃~!!"

"레이카. 매너가 없구나. 갑자기 커피를 내뿜다니..."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레이카는 마시던 커피를 힘차게 뿜어냈고 그런 딸을 보며 어머니는 할 수 없다는 듯
휴지로 테이블을 닦으며 주의를 주었다. 잠시 기침을 하던 레이카는 휴지로 입 주위를 닦으며 진정을 시킨 후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격렬히 화를 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뭐...엄마로서 당연히 걱정되니까 물어보는거지? 그래서 알프레드 군, 어디까지 간거야?"

"대답할 필요없어! 엄마는 그냥 호기심으로 물어보는거니까!"

"에...어디까지...라 하면..."

알프레드는 잠시 커피잔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기었다. 불안한 레이카의 눈빛과 호기심에 가득찬 어머니의 눈빛이
교차하는 순간 알프레드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거침없이 대답했다.

"학교까지 갔는데요."

"뭐...? 잘 못 들었는데 다시 한 번."

"학교까지 가는게 뭔가 잘못된건가요?"

그런 산뜻한 알프레드의 대답에 레이카의 모친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물었지만
알프레드의 대답은 같았다. 그런 그의 대답에 레이카의 어머니는 잠시 한숨을 쉰 다음 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비통하게 내뱉었다.

"안돼...이 애, 니 아빠보다 더 심해."

"응...알고 있어...원래 이런 애니까..."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알프레드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 후 다 마신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다시 계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막차 시간이 다되었지만
레이카와 알프레드는 과제를 끝낼 수 없었다. 알프레드는 밤을 새서라도 계산을 끝내려 했지만 레이카는
막차 시간을 상기시키며 알프레드를 억지로 끌어내 버스정류장으로 데리고 갔다.

"미안,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아니 괜찮아. 내일도 하면 되니까. 그러니까 내일도 우리 집에...올래?"

"안 바쁘면"

그런 둘의 대화는 곧이어 도착한 마지막 버스로 인해 끊겼다. 그리고 알프레드가 올라탄 버스가 안 보일 때까지
레이카는 손을 흔들었다.

"둔탱이..."

라는 한 마디를 덧붙여서...

그리고 레이카의 레포트와 약속은, 절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다음 날 갑작스러운 제논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존재에에 의한 학교의 붕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죽음으로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알프레드는 단 하나 뿐인 가족을 잃었다. 아이다 라이오넬, 그녀도 그 희생자에 포함되어있었다.

모두의 합동 장례식 날,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레이카와 알프레드는 그 장례식에 참석해 고인이 가는 마지막을 지켜봤지만, 제이크 트리탄다이스는 그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를 본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검은 양복을 
입은 채로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 후, 제이크는 초췌한 모습으로 레이카와 알프레드의
앞에 나타나 선언하듯 외쳤다.

"난, 모든 제논을 파괴하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마치 정신나간 사람처럼 외치는 제이크를 보며 레이카는 물었다. 정신이 나간 듯 했지만 제이크의 눈은 그 누구보다
불타고 있었다. 그는 다시 소리높여 외쳤다.

"난 모든 제논을 파괴하는데 내 모든 꿈을 걸겠어...그러니까, 알프, 레이레이, 도와줘. 너희들이 필요해."

"...나도 돕겠어. 누나의 복수를 갚겠어"

제이크의 제안에 알프레드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대답했다. 잠시 생각한 레이카는 각오를 다지듯 대답했다.

"나도 더 이상 누군가 제논에게 희생되는 건 참을 수 없어."

"....모두들 고마워"

셋은 아름다운 석양을 뒤로한채 폐허가 된 캠퍼스를 보며 스스로 결의를 다졌다. 누군가는 복수를, 누군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꿈을 걸었다.

"난 제논을 파괴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겠어. 무슨 짓이든...."

자신에게 다짐하듯 그는 중얼거리며 차가운 콘크리트 보도 위를 무미건조한 발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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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잘들 보내셨나요? 이번주에는 추석이다해서 바쁜 한주였지요. 날림님이 지난주에 주신 글을
이 제서야 후딱 삽화 집어넣고 올리게 되는데요, 아무튼 늦은 업 죄송합니다 -ㅁ-;;;
그러고 보니 다음주는 또 시험기간에 돌입하게 되는데 짬나는데로 해서 시험도 시험이지만
업데이트는 착실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ㅁ-//

그건 그렇고 지난 첫번째 이벤트는 아무도 메일을 보내주지 않은 덕(?)택에 책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축하 축하 [....]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는 말도 많았는데 학과 동기는 '전 혀 모르겠다' 라고 해서 결국 못했다는 군요.
아무튼 첫번째 이벤트. 네 좋습니다. 좋아요. 시작이 좋습니다. [oTL]

.... 나 안해! [...]
by -usi- | 2006/10/07 22:56 | 제논 소설판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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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날림 at 2006/10/08 03:14
역시 80~90년대 로봇물들 패러디는 어려웠나봅니다...OTL
Commented by -usi- at 2006/10/08 13:06
크 퓽 -ㅁ-
Commented by 육포 at 2006/10/09 15:23
다른 사람들이 너무 모르는게 아니라
나나 날림님이니까 아는거야

oTL[...]
Commented by -usi- at 2006/10/09 20:20
후우 -ㅁ-;;; 아무튼간 안구에 습기차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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